이영일 기자
▲ 여가부 청소년예산 삭감 반대 서명운동은 서명에 들어간지 하루만인 8일 1만명을 돌파했다.ⓒ 전국청소년예산삭감 비상대책위원회
"대한민국 청소년정책은 죽었다."
"모든 청소년기관, 시설 단체들을 멈춰야 한다."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이 뭐 필요한가, 다 반납하자."
여성가족부(아래 여가부)의 청소년 예산 삭감 여파가 지역에까지 영향을 주며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관련 기사 : 청소년활동 예산 전액 삭감 여가부... 현장 지도자들 "해도 너무한다", https://omn.kr/25gx2).
당초 내년도 청소년활동 지원 예산 38억여 원과 국제교류 128억 원만 전액 삭감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인권교육 예산 5억여 원 전액 삭감과 청소년 근로보호 사업도 폐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가부가 청소년정책을 다 죽이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는 것.
권일남 비대위 상임대표 "여가부가 청소년정책 뿌리를 송두리째 뽑고 있다"
전국의 청소년지도자들이 모여 결성한 전국청소년예산삭감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는 공동대표단 체계를 구성하고 비대위 입장을 정리한 성명을 확정했다. 이를 11일 여가부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비대위 상임대표를 맡은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7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여가부가 삭감하겠다는 청소년동아리나 어울림마당 등의 예산은 청소년들이 도서, 산간벽지, 농어촌 등 전국 각지를 망라하여 저마다 재능을 찾고자 노력하며 꿈을 꾸었던 소박한 마중물 예산이다. 이런 예산들에 칼질을 하는 건 30년 이상 공들이고 성장해온 청소년정책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리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권 상임대표는 또 "청소년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 시민으로서 청소년에게 해당되는 활동, 보호, 복지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고 여가부 조치를 비판했다.
청소년계 넘어 교육계와 인권계도 여가부 규탄 동참
한국청소년지도사협의회는 7일 성명을 통해 "코로나19로 위축된 청소년활동을 활성화 하고 정부 지원을 일상화 하겠다던 여기부장관은 어디있냐. 청소년지도사들은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행복을 위해 가능하면 정부 정책과 비전을 지지해왔지만 이번 예산 삭감은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대도 7일 성명을 통해 "학교 교육이 채우지 못하는 다양한 청소년축제와 동아리 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예산을 감액도 아니고 전액 삭감한 것은 그동안 청소년활동을 여가부장관 약속 2호라며 말해왔던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잘 보여준다"며 "역대 정부에서 청소년활동 예산을 아예 없애버린 것은 그 유래를 찾을 수 없거니와 그런 발상조차도 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전국의 YMCA도 항의 대열에 동참했다. 한국YMCA 간사회 청소년분과와 한국YMCA청소년수탁시설협의회, 한국YMCA 사무총장협의회, 한국YMCA 간사회는 지난 8일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와 정부의 당연한 목표여야 함에도 윤석열 정부가 올해656조원의 정부 예산 중 고작 38억여 원(0.0057%) 밖에 되지 않는 예산을 삭감해 도대체 어디에 더 쓰려 하냐"며 청소년기본법과 청소년활동법 제정의 취지에 맞게 청소년활동 예산을 재편성하라고 촉구했다.
청소년기본법 제47조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년 활동을 지원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청소년활동진흥법 제5조에는 '청소년은 다양한 청소년 활동에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꿈과 희망을 실현할 충분한 기회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도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여가부가 내년도 성인권 교육 사업을 폐지하고 관련 예산 5억 5600만 원을 전액을 삭감한 것은 자신들의 책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태업 선언과 다름없고 국가 주무 부처가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맹비난했다.
전교조는 "여가부가 사업 폐지 사유로 보건복지부가 발달장애인 성 인권 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수요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성인권 교육은 2013년부터 시작돼 10여 년이 진행된 안정화된 사업이고 교육 수요는 실제로 줄어들지 않았다"며 "사업 폐지와 예산 감액으로 인해 교육 공백이 생길 것은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들의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도 지난 7일 성명을 내고 "스쿨미투에서 드러났듯 많은 학생들이 여전히 성폭력의 위험을 겪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3명 중 1명(31%)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한국리서치.2023.4.18.)에서도 드러나듯 한국 사회 내 성차별은 심각하다. 성 인권 교육을 강화해도 모자를 판에 사업 폐지와 예산 삭감이 웬말이냐"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부터 현재까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성차별을 외면하고 여가부마저 없애려 한 연장선에 있다"며 "성평등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이 성평등 전담부처인 여가부장관직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며 여가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여가부 방침에 지자체도 지방비 배정 축소하거나 없앨 것으로 예측
당장 전국의 지자체들도 정부 매칭사업(청소년운영위원회, 동아리지원, 어울림마당 등)에 해당하는 국비가 여가부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지방비 배정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전국의 청소년 활동이 '스톱'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역의 한 청소년지도자는 비대위 커뮤니티에서 "매칭펀드로 이뤄지는 국비·기금 사업은 정부 예산이 없어지면 의지를 가진 담당 공무원이 없으면 바로 사업 자체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의 한 청소년센터 지도자는 "지자체들도 보조금 사업 예산을 20% 이상 삭감하라는 지침이 내려오고 전년도보다 한 달 이상 빨리 2024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라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벌써부터 청소년센터 예산도 10~20% 삭감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편, 비대위가 진행하고 있는 여가부 청소년예산 삭감 반대 서명운동은 서명에 들어간 지 하루 만에 1만명을 돌파했다. 비대위 측은 "하루 만에 청소년계가 서명 1만명의 뜻을 모은 건 처음"이라며 "그만큼 청소년 현장의 분노가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여가부 비난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오는 13일, 518 민주광장에서 청소년 예산 삭감 반대 기자회견을 연다. 이들은 이미 국회의원들에게 압박 문자 보내기를 진행하고 있다.
비대위도 11일 여가부에 입장문을 전달한다. 향후 기자회견, 1인 시위, 여가부장관 면담, 여가위원장 미팅, 청소년지도자 규탄집회, 언론 광고 등도 진행한다고 비대위 관계자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