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 전 문화관광부 차관

을사년 새해, 세상이 어지럽고 날씨도 을씨년스럽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중국 AI ‘딥시크’의 젊은 창업자 량원펑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 심은 사람’을 떠올린다. 프로방스 알프스의 한 황량한 계곡에서 양치기 노인이 세계 대전이 일어난 줄도 모른 채 반백 년 동안 나무를 심어 결국 풍요로운 숲을 일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산과 들에 청소년 꿈나무를 정성껏 심어야 한다.
1인당 GDP 3만달러 시대 선진 한국에서 왕자·공주 대접을 받으며 자란 우리 청소년들이 타인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고 소통력과 사회성, 협동 의식이 떨어진다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온실에서 나온 화초가 폭풍우와 폭설을 만났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외국에 유학 간 한국 학생이 초반에는 두각을 나타내나 세월이 가면서 체력·끈기·집중력·협업 능력이 떨어지고 자기 주도로 삶을 개척하는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
산과 들, 강과 바다에서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협동심을 키우는 학교 밖 청소년 단체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외동 청소년들이 자연 속에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며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키울 수 있도록 학교 밖 단체 활동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보이스카우트·걸스카우트·YMCA·YWCA·해양소년단·항공우주소년단 등 청소년 단체 활동을 다시 부흥시켜야 한다.
놀이 문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소통과 협업 능력을 키워 인생을 슬기롭게 살 수 있는 리더십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 필자는 고교 Y클럽, 대학 Y클럽, Y지도자 등 YMCA 활동 8년이 학교 교육 못지않게 자아 형성과 세계 시민 의식 함양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교육은 학교 교육과 학교 밖 청소년 단체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지난 10년간 청소년 단체 활동은 거의 고사 상태다. 청소년 단체의 간판 격인 한국YMCA는 1903년 창립해 민족의 독립과 시민사회 건설에 이바지해 왔으나 이제 회원이 수만 명으로 격감했다. 1922년 시작된 보이스카우트 운동도 한때 100만명이 넘던 스카우트가 5만명 이하로 감소했다.
2019년 서울·경기 교육청 등이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학교 업무를 정상화한다면서 하루아침에 교사의 청소년 단체 지도교사 업무를 배제한 행정 조치로 청소년 단체 회원들이 줄지어 탈퇴했다. 이 행정 조치는 청소년 단체의 눈부신 교육 성과를 간과한 비교육적 단견으로 보인다. 30여 년간 청소년 정책의 주무 관청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다시 여성가족부로 이관되면서 청소년의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한 청소년 정책이 실종된 것 같아 안타깝다. 문화·예술·종교·스포츠의 인적·물적 자원과 네트워크를 갖춘 문화체육관광부로 청소년 정책 업무를 재이관해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길 기대한다.
매년 18조원이 넘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은 펑펑 쓰고도 한 해 수조 원씩 남아 사용하지 않은 교육 교부금이 18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120년 넘게 청소년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청소년 단체의 자립·자조를 위해 매년 1조원이라도 청소년 단체에 지원하는 특단의 조치를 건의한다. 저출산 디지털 시대에 우리 청소년들이 온실 속 화초,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아기 상어가 되어 넓은 바다로 나가 세계 청소년들과 어울려 놀게 하자.